<설거지 단상>
아내가 7년 만에 한국에 갔습니다. 장모님의 연세도 높으시고, 뵙지 못한지가 오래 되었습니다. 요즘은 카톡이 있어서 거의 매일 얼굴을 뵙고 대화를 나눌 수 있지만, 계절이 바뀔때마다 힘들어 하시는 모습을 느낄 수 있습니다. 어렵사리 결정하여 한국행을 실천에 옮겼습니다. 아니다 다를까 장모님이 가장 기뻐하십니다. 목소리부터 달라지셨습니다. 아마도 중년의 막내딸을 섬기시느라 더 분주해 지실 것 같습니다. 다른 것 하지 말고 장모님과 추억 만들기 특명을 내렸는데 잘 수행하고 있으려나 의문입니다.
아들들이 장성하여 먹는 문제는 크게 여겨지지 않습니다. 지난 주간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신학교 수업이 있어서 집을 비웠습니다. 집에 돌아온 날 아니나 다를까 싱크대에 설거지꺼리가 한 가득입니다. 아들들이 요리를 하고 챙겨 먹는 것은 어찌 어찌 잘 해내는데, 두 아들 다 설거지를 차일 피일 미루고, 내가 요리 했으니 네가 해라 서로 서로 미룬 것 같습니다. 안 봐도 비데오입니다. 서로 미루다 보니 나중에는 해결책을 못 찾은 것이겠지요?
빈자리도 빈자리이거니와, 일상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게 여겨지는 일들이 참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미루다 보면, 숟가락과 젓가락을 다 소진하기까지 쌓이게 마련입니다. 더 이상 사용할 수저가 바닥이 나면, 그제서야 설거지에 돌입합니다. 많이 쌓아 놓았기에 시간도 투입되는 노동력도 엄청납니다.
아들들에게 한 마디 하려고 하다가 제가 비추어져서 입을 다물었습니다. 미루면 낭패입니다. 별것 아닌 것 같은데 낭패를 당합니다. 중요하지 않은 것 같은데 중요한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한 순간 한 순간 잘 대처하여야 합니다. 심각할 필요는 없지만 그리 멀지도 않은 미래에 당할 일들을 쉽게 여기다가는 어려움이 닥칩니다.
목회가 일이 되면 낭패입니다. 목회를 위해 우선순위에 두어야할 것들이 있습니다. 정기적으로 말씀을 대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일이 되면 안됩니다. 관계에서 비롯되어야 합니다. 관계를 놓치면 일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지속적인 관계 가운데 저를 두시고 기다리십니다. 그런데 저는 자꾸만 미룹니다. 관계에서 흘러 넘쳐야할 것들이 메말라지면 낭패입니다. 그때에야 말로 섬김의 사역이 일이 되고 맙니다.
음식을 해서 나누는 시간은 소중합니다. 작은 대화들을 나누면서 회복을 하기도 하고 중요한 결정을 하기도 합니다. 그에서 나오는 설거지는 다음을 위해 중요합니다. 설거지를 미루면 큰 일거리가 됩니다.